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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만호마을

근대역사 살아 숨 쉬는 문화·관광의 보물창고

본문

  • 목포 태동 ‘만호동’ 육지·바다 잇는 ‘교통중심지’
  • 가옥·주택 등 보존·활용 가치 ‘우수’ 문화재 등재
  • 대한민국 4대 관광도시·국제슬로시티인증 목전

목포 만호동(萬戶洞)은 근대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우리 옛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고다. 가옥·주택·창고 등 보존과 활용 가치가 우수하다. 이를 인정받아 2018년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718호로 지정됐다. 과거에는 오락, 휴식, 상업시설 등이 발달해 전국 최고 도시로 손꼽혔다. 서울의 ‘명동’처럼 목포의 중심가로 불렸다. 목포 상업을 발전·선도하고, 바다와 육지를 연계하는 전남권 교통요충지였다. 그러나 무분별한 택지개발과 대단위 아파트 공급이 이뤄지고, 인구·상권 이동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유입 정체 등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만호동’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쇠퇴한 원도심의 경쟁력 회복 및 도시재생 수요 증가를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건맥 1897 축제’, ‘도시재생사업’, ‘협동조합 단체’ 등 마을 발전을 위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움직임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살아있는 역사박물관’ 만호동. 대한민국 관광·경제·문화도시 1번지로 주목받고 있다.

목포의 태동 ‘만호동’ 발자취

목포 만호동은 조선조 세종 때 수군진영이었던 목포진을 설치해 수군만호가 있었던 곳이다. 목포진, 만호진이라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목포진에 속해있는 동해안통 7정목을 목포대라 불렸다. 1949년 동제 실시에 따라 중동(仲洞), 만호동(萬戶洞), 수강동(壽康洞), 해안동(海岸洞), 항동(港洞), 유동(柳洞), 금동(錦洞), 경동(京洞)의 8개 동을 관할했다. 1997년 1월1일 행정동 분합에 따라 영해동과 만호동을 통합하면서 현재는 만호동으로 불리고 있다. 목포 땅이 역사 속에 ‘목포’라는 이름으로 공식 확인된 것은 1439년 4월이다. 수군만호를 배치한 만호진 설치기록으로 알 수 있으며, 이때부터 사람 사는 곳으로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만호동’은 곧 목포의 태동 ‘목포’의 탄생과 역사를 같이한다.

전남권 ‘교통·상권중심지’ 우뚝서다

목포항 개항(1897년 10월)이후 만호동은 목원동(조선인 마을)과 대비되는 ‘구 각국공동거류지(일본인 마을)’이었다. 만호동을 시작으로 해벽공사, 방조제 축조, 매립공사, 도로의 개통 순으로 도시개발이 이뤄졌다. 이후 목포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는데, 1897년 2천806명에서 1932년 5만명이 넘어 전국 6대도시로 성장했다. 1900년대 초에는 만호동에 거주 일본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해 오락, 휴식, 상업시설 등의 발달을 이뤘다. 일제강점기시대(1910-1945) 개항 초기에는 거류지 서쪽의 일본영사관 앞을 중심으로 해안을 향해 상가, 상업용 오피스, 주택, 공장 및 창고가 위치했다. 그러나 매립 공사가 이뤄지면서 무안가도를 향해 동쪽으로 확대됐다. 전남에서 최초·최대로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았으나 일본인 마을과 조선인 마을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으며, 특히 조선인의 삶이 열악했다. 해방 이후(1945-1980년) 만호동은 전성기를 맞는다. 호남선, 목포여객터미널, 국도1호선의 시점으로서 바다와 육지를 연계하는 전남권 교통중심지 역할을 했다. 전통시장인 항동시장과 목포종합수산시장이 있고, 건해산물 상가거리가 위치해 있어 전남 해산물이 집결하는 장소로 주목받았다. 서남부의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 목포 상업 발전을 선도해나가는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하당 및 남악의 택지개발 사업과 함께 대단위 아파트 공급이 이뤄져, 인구·상권 이동이 일어나면서 만호동으로 대표되는 원도심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쇠퇴한 원도심의 경쟁력 회복 및 생활환경이 낙후된 지역의 도시환경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만호동 일대에 목포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요해처 ‘목포진’과 우수한 근대역사문화자원

군사 요해처 ‘목포진(木浦鎭)’은 목포라는 지명이 옛 문헌상 등장하는 내용 중 지금의 목포와 지리적으로 일치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목포진이 설치된 시기다. 따라서 목포역사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 진(鎭)이 설치됨으로써 이후 개항 전까지 목포역사의 제1기라고 할 수 있는 약 500년 동안 군사 요해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 도시의 성격을 목포에 부여시켜 주는 계기가 된 곳이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대한제국 개항기에 ‘목포 해관’ 설치에 따른 근대기 통상 항만의 역사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의 생활사적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소다. 근현대를 관통하는 목포의 역사문화 생활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보존과 활용할 가치가 우수한 곳이다. 일본식가옥과 구 목포부립병원 관사를 포함한 16곳의 점 단위 등록문화재가 면 단위의 공간에 포함된 지역이다.

지역사회 힘 모아 ‘옛 명성’ 되찾는다

목포는 김, 멸치를 중심으로 전국 건해산물 유통의 출발지이자 중심지로 오랫동안 기능해 왔다. 100여곳이 넘는 상점은 건해산물 상인회와 조합을 중심으로 지역경제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목포 원도심의 침체기를 겪으면서 방문객이 줄고 상권이 침체되면서 건해산물상점가는 활기를 잃어갔다. 도시재생, 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 관광거점도시 선정 등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면서 새로운 활기를 찾아가는 시점에 2019년 가을 건해산물 거리 일대에서 개최된 건맥1897 축제는 마을 주민, 상인들이 자발적인 참여와 기여로 만들어 냈다. 2019년 9월28일 수천명의 목포 시민들이 참여해 가을밤을 환하게 밝힌 ‘건맥 축제’는 건어물과 맥주의 조화를 통한 지역축제 브랜딩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만호동은 주민과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1897 개항문화거리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도시재생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민이 주도적으로 사업지를 유지·관리하기 위한 비영리 조직이다. 재생사업지내 공영주차장 등 시설물 위탁관리, 주거환경개선(집수리사업), 빈집관리 등 부동산관리, 마을상점 운영 등을 통한 수익사업을 추진 중이다. ‘협동조합 시네마 MM’은 지속적인 마을 기록 작업을 비롯한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조합으로 아카이브 전시, 교육 등을 통한 도시재생 관련, 독립영화 상영, 다큐멘터리 제작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특히 ‘2020 영화로운 만호’라는 마을 영화축제를 개최,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꿈바다 협동조합’은 목포만의 특화된 도시민박 서비스 제공을 위해 설립된 조합이다. 목포시의 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설립됐으며, 목포마을호텔 ‘꿈꾸는 바다꼴목’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만호동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주민들과 함께 개항장의 위상을 재창조하면서 문화 및 경제적 활력을 향상시키는 등 지역의 정체성 확보와 지역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