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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용반마을

해마다 설날에 합동세배를 올리는 효도마을

본문

  • 갑오 동학농민혁명 당시 용반접 활약했던 터전
  • 설 전날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께 합동세배
  • 마을행복공동체 활동지원 사업 활발하게 진행

‘길게 흥한다’는 장흥(長興)은 예로부터 문림의향(文林義鄕)의 고장으로 불렸다. 문림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이견이 없다. 인구 3만8000명의 작은 고을에서 현역 등단 작가만 120여 명에 달한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이 꼽히고 있다. 장흥은 말 그대로 한국 문학의 본향(本鄕)이다. 의향에 대해서도 의견은 일치한다. 장흥은 1894년, 동학농민 혁명의 최후 격전지로 동학의 숨결이 서려있는 고장이다. 이에 앞서, 회진면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조선수군을 재건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사의 현장, 회령진성이 남아 있다. 또한 전국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해동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문학의 향기와 의로운 정신이 깃든 장흥에서 그 전통을 이어가는 마을이 있다. 바로 부산면 용반마을이다.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의로운 땅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탐진강변에 자리잡은 용반리(龍蟠里)는 용의 기운이 서려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지와몰이라 불렸는데, 이는 마을에 온통 기와집이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 앞에는 너른 들녘이 펼쳐져 있으며 저 멀리에는 기이한 형상과 절벽을 자랑하는 기악산(장흥읍지)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사람들은 이 산의 형태가 말을 탄 기사가 달리다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기역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이 탐진강가에 자리잡고 있는터라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용서 고인돌, 용동 고인돌 등 고인돌 군이 대표적이며 고분도 다수 그대로 있다. 마을 주민들은 예전에 마을 문화재 조사 때 연구진들이 고인돌 군에서 돌칼, 돌도끼 등을 출토한 사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갑오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용반접(장흥동학혁명군 3대접의 하나)이 활약했던 터전이기도 하다. 마을 출신의 지도자 이사경씨가 동학의 접주로 활동하면서 용반접을 이끌었다. 하지만 갑오년 12월 장흥 석대전투에서 패전한 후 많은 주민들이 희생 당한 아픈 과거도 안고 있다. 또한 당시 용반접이 관군에게 진압되는 과정에서 용반접에 많은 후원을 했던 마을 천석꾼이 붙잡혀 장흥벽사역에서 처형당한 슬픈 역사도 함께 하고 있는 마을이다. 그 때 천석꾼집터는 명당터라고 하여 집을 불태우고 그 자리에 진압군대장 길씨가 조부모 묘를 옮겨다 쓰는 불행한 일을 겪기도 했다.

풍년을 기원하며 217년째 지내오는 봇제

유서 깊은 마을답게 이 곳에서는 정월대보름 전날 저녁에는 마을 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주는 용반보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봇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치르는 봇재는 217년째 내려오고 있는 마을의 대사이다. 또한 정월대보름과 하드렛날(농사가 시작되는 날)에는 동네 각 가정을 돌며 흥겹게 지내는 풍물놀이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설 명절 전날 저녁에는 전국 각지에서 고향을 찾은 아들, 딸, 손자들이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절을 올리는 합동세배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마을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마을의 대사를 공동으로 치를 수 있은 것은 상부상조하는 마음이 평상시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을 인심이 유달리 좋고 협동심이 강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을 주민들은 어찌됐든 풍물놀이와 합동세배, 봇재행사는 꼭 함께 하자고 다짐하고 있다.

효(孝)의 정자 용호정(龍湖亭)

남도의 풍류와 정신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소재 중 하나로 정자를 꼽을 수 있다. 청아한 바람이 늘 소통하는 그 곳은 쉼과 여유를 즐기는 장소이지만, 상당수는 저항과 투쟁의 공간으로도 그 역할을 해 왔다. 물론 학문과 시문의 터전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주로 강가나 산언덕에 자리 잡은 정자는 지금도 그 기능을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장흥은 탐진강을 중심으로 강 주변에 8개의 정자가 건립돼 예부터 정자문화가 형성됐으며, 나아가 장흥이 내세우는 문림의향의 토대가 됐다. 이 곳 용반마을에도 빼어난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탐진강 상류인 용소(龍沼)의 벼랑 위에 서 있는 용호정인데, 이 곳은 여느 정자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대부분의 정자가 풍류를 목적으로 지어진데 반해 이 곳은 효(孝)를 상징한다. 최규문 등 4형제가 아버지를 위해 지은 정자이기에 그렇다. 사연은 이렇다. 최규문의 할아버지 묘는 강 건너에 있었다. 때문에 규문의 아버지(최영택)는 비가 올 때마다 부친의 묘소를 찾아가지 못하게 됐다. 그럴 때마다 이 곳에 서서 묘를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규문이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를 위해 초정(草亭)을 짓고 부친의 효성을 기렸다. 때는 조선 순조 28년(1828년)이다. 하여 세상사람들은 이 정자를 두고 “아버지를 뵙기 위한 정자(望親之亭)요, 또한 아버지를 위로하는 정자(慰親之亭)”라고 불렀다. 탐진강을 바로 눈앞에 두고 들어앉은 용호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에 낮은 자연석 주초위에 세워진 단아한 정자다. 내부에는 노사 기정진의 용호정기(龍湖亭記)를 비롯, 이곳의 아름다움과 애뜻한 사연 등을 시문으로 표현한 편액 20여개가 걸려있다. 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열녀가 많이 배출돼 열녀비 5개가 현존하고 있다.

행복공동체 사업으로 더불어 사는 마을 창조

이처럼 의(義)와 효(孝)가 살아 숨쉬는 동네답게 요즘은 공동체 사업으로 더불어 사는 마을을 가꾸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을행복공동체 활동지원 사업으로 아짐이랑아재랑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주요 프로그램은 용반마을발자국, 아짐이랑레시피, 아재랑지푸라기공예, 아짐이랑아재마을총회가 진행됐다. 올해는 경험을 살려 지와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와몰 프로젝트는 마을을 스토리텔링하고 지와몰페스티발 등을 기획, 마을의 협동심을 과시했다. 이에 앞서 이 마을에서는 2018년 2월부터 현재까지 장흥군 최초로 꽃게 통발 조립 소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60세 이상의 어르신 3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함께 마을에는 ‘인물’들도 만다. 전춘례씨는 북의 명인으로 특히 잔가락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귀량씨는 소쿠리, 꼴망태, 옹뎅이를 만드는 지푸라기공예의 대가다. 그리고 이종선씨는 문어를 활용해 전통 혼례 폐백에 쓰는 봉황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사람들은 힘을 모아 마을 진입도로개선, 가로수길 조성 등 주변 환경을 정비해 수려한 마을경관을 조성했다. 그리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장기적인 마을 비전을 수립해 마을가꾸기, 경관개선 및 농어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공모 등을 통해 살기 좋은 행복마을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