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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원고막 마을

과거와 현재 잇는 ‘석교’ 마을 미래 꿈꾼다

본문

  • 800년 역사 문화 자원 풍부 함평·나주 잇는 길목
  • 고막천 석교 역사 전승·발전 새로운 관광지 조성
  • 청년회 중심 자체 마을주도형 공동체 사업 ‘눈길’

예부터 마을과 마을을 잇는 주요 수단은 천을 건너는 다리였다.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도,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길을 나선 상인들도 천(川)을 건너기 위해서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 했다. 특히 석교는 오랜 시간 홍수와 전쟁 등 풍파를 견뎌내면서 많은 이들의 삶과 애환의 길목에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견고하고 단단한 돌다리는 한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미래를 위한 새로운 주춧돌이 되고 있다. 함평 원고막 마을은 오래된 석교와 함께 유구한 역사와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마을공동체 서사를 그려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800년 마을 역사 전남 주요 길목

함평 원고막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 해주 최씨가 개촌(開村)했다는 전언이 있으나 그 후손이 지금은 1호도 살고 있지 않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뒤를 이어 청주한씨(淸州韓氏) 양혜공파(襄惠公派) 천신(天信)이 1650년경에 입촌해 그 후손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한씨 입촌 이후에 밀양박씨 등 여러 성씨가 입촌했다. 한천신(韓天信)의 고막원 입촌은 함평군에 청주한씨가 입향한 최초기도 하다. 당초 마을의 지명은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고호(古湖)로 명명돼 있다. 현 영산강의 옛 지명 사호(沙湖)인 것을 생각해보면 고호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고막에 ‘원’자가 붙은 것은 고려와 조선조 때 이곳이 원(院)이 있기 때문이며, 고막이란 이름은 고막대사(古幕大師)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고막대사는 700여 년 전에 마을 앞에 돌다리를 놓은 대사로 전해오고 있다. 지난 1924년 간행된 무안군지에 의하면 고막원에는 원루(院樓)가 있었고 중앙관청에서 내려오는 관원이나 지방수령이 순시를 할 때 휴게소로 썼고 또 신구 수령의 교대 장소로 썼다고 한다. 나주시와 경계에 있는 원고막 마을은 과거 한양으로 가기 위한 건널목이었고, 떡을 지어 시장으로 향하는 아낙들의 가교였다. 과거 방문자가 머물다 가는 주요 길목이었고, 풍요로운 인심은 다시 찾고 싶은 마을공동체로 거듭났다.

마을 대표 상징물 ‘고막천 석교’

원고막 마을의 ‘고막다리(고막천 석교)’는 700여년의 마을 역사를 지켜온 대표적 상징물이다. 지난 2003년에는 보물 제1372호로 지정, 현존하는 석교 중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알려져 있다. 이 다리는 목조 가구식을 석조형태로 바꾼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돌로 만든 다리로 고막천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고막천을 두고 다리를 건너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나주군 문평면 고막원(古幕院)이다. 고막원은 고려시대 복암사(伏巖寺)로 가는 사람들이 쉴 수 있게 설치한 원(院)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원종 14년(1273)에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막다리는 모든 사람이 편안히 건널 수 있길 바라는 고막대사의 원력 덕분인지 고막천이 여러 차례 범람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잘 남아 있다. 일명 ‘똑다리’로도 불리는 이 다리는 예전에 고막리에서 떡을 만들어 이 다리를 건너 영산포 등지로 나가서 팔았다고 해서 ‘떡다리’가 됐다고도 전해진다. 현대식 도로가 나기 전에는 함평에서 나주나 영산포 등으로 나가는 중요한 길목 구실을 하던 다리였지만 지금은 농로로 쓰이고 있다. 다리는 자유롭게 돌을 자르고 짜 맞춘 솜씨가 돋보이는데, 석축방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간결하고 투박한 인상을 준다. 석재를 다듬거나 모양을 내지 않은 채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평면의 노면을 만들어 연결시켰다. 중앙에는 중간석을 끼워 노면을 2개의 구획으로 갈라놓아 대청마루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1910년대에는 이 곳에는 쌀 100석을 실을 수 있는 배가 드나들었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다리 언덕에는 지금도 4개의 빗돌이 남아 있어 그때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01년에는 보수공사시 바닥기초나무말뚝탄소연대 측정결과 최소한 고려말 조선초로 판단돼 지금까지 민간지역에서 축조연대가 밝혀지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임이 과학적인 방식에 의해 증명됐다. 고려시대 석교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고막다리는 이제 원고막 마을 후손들이 계승하고, 더 많은 방문객이 머물다 갈 수 있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최근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오는 2021년에는 둘레길 조성 사업으로 이 주변이 정비될 예정이다. 과거 교통 중심지 역할의 고막천 석교는 현재 마을 주민들의 전승·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석교 주변 민물 낚시터와 산책로 등 조성으로 관광객이 더 머물다 가는 특색있는 장소로 거듭날 예정이다.

‘청년회’ 마을주도형 공동체 문화 구축

원고막 마을은 40여년의 명맥을 이어오는 청년회의 단합으로 꾸준한 발전과 지속가능한 공동체 발전을 도모해왔다. 각종 전문 기술을 보유한 청년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어르신들과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두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특히 1980년에 지어진 마을회관은 청년회를 중심으로 마을 어른들과 출향민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으고 부지를 선정하고, 건축하는 등 직접 구축해 눈길을 끌었다. 마을 어른들의 유지를 이어 최근 다시 재결성한 청년회는 명절이면 윷놀이 대회를 개최, 직접 두부를 만들어 마을에 나누는 등 다양한 추억쌓기를 3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와함께 청년회는 수령 235년에 달하는 당산나무에 대한 정월대보름 당산제 부활을 모색하고 있으며, 고막천 석교 인근 정비와 방역 등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원고막 마을은 특유의 단합력으로 관(官)주도형이 아닌 마을주도형 공동체 문화 구축에 힘쓰는 등 구성원간의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18년 행복함평 마을 만들기 마을발전계획 발표회 주민주도 공동체 프로그램 부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한편, 함평 고막천 인근에 위치한 고막소공원에는 故 이익주 전 부산시 행정관리국장의 추모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고 이익주 국장은 2005년 호남지역 폭설 피해시 함평군 복구활동 중 순직했으며, 군에서는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려 이듬해 3월29일 9.5m 규모의 추모비를 건립했다. 이에 따라 원고막 마을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영호남 화합과 우호증진을 다지는 교량역할도 하게 됐다. 원고막 마을은 예부터 함평과 나주를 잇는 길목이자, 방문자들이 머물 수 있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옛 고을은 이제 새로운 문화관광 마을로써 그 가치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