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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당리마을

작은 섬마을, 사랑·역사 이야기 꽃 피우다

본문

  • 완도 최대규모 슬로걷기축제의 주무대
  • ‘해양 문학의 백미’ 표해록에 기록된 사연
  • 마을고유 장례문화 ‘초분’도 관심거리

‘느림은 행복이다.’ 청산도 당리마을은 완도 최대규모 축제인 슬로걷기축제의 주 이벤트 무대(슬로길 1-2코스)이다. 청산도 슬로길 11코스 중 가장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청산도 도청항에 내려 당리 언덕길을 오르면 영화 ‘서편제’ 촬영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길이다. 당리 언덕길은 봄이면 노란 유채꽃, 가을이면 알록달록 코스모스와 순수한 매력을 자랑하는 구절초로 단장된다. 드라마 ‘봄의 왈츠’를 촬영한 화랑포전망대까지 오르는 이 길은 청산도를 대표하는 슬로길 1코스다. 당리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배가 드나드는 도청항과 끝이 안 보이는 남쪽 해안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이런 작은 섬마을, 당리마을에는 수백년 전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마을을 지켜온 한내구 장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트 독살’ 표해록에 기록

당리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락해변에는 하트 독살이 있다. 이 하트 독살에는 250년 전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영조 46년(17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주 사람 장한철이 쓴 ‘해양 문학의 백미’라고 일컫는 표해록(漂海錄)에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장한철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제주도 사람 29명과 뭍으로 향하게 되고 그러던 중 풍랑을 만나 조난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후 류큐열도 호산도와 완도 소안도를 표류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청산도에 이르렀다. 생존자 8명은 청산도 주민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섬에 머무르게 되고 장한철이 운명처럼 만난 여인은 바로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꿈속에 나타나 물을 건네준 청산도 무녀 조씨의 딸(20세)이었다. 그렇게 사랑하게 된 두 남녀는 장한철이 제주도로 떠나면서 영영 이별하게 된다. 제주도로 떠난 장한철이 그리워 바닷가에 나가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을 한 여인의 절절한 사랑이 250년 뒤에라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청산 면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독살이 있다.

한내구 장군이 지키는 마을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 사람들이 청산까지 내려와 청산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는 것도 모자라 일본 해적과 당나라 해적이 지내진(청산과 고금 사이의 섬, 노화와 완도사이의 섬)에서 해적질을 일삼았다. 이를 알게 된 장보고 장군이 바로 당나라에서 신라로 넘어가 임금님께 군사 3만만 보내주면 이 상황을 해결하겠다며 군사 3만을 데리고 내려갔다. 장보고 장군은 무예가 뛰어나고 힘이 센 부하인 한내구 장군에게 2만 군사를 맡겼고 군사 3만을 훈련시켜 해적질하는 해적들을 모두 때려잡아 청산의 바다를 평화롭게 했다. 또한 당으로 넘어가려는 왜놈들을 장보고의 해상권 없이는 가지 못하게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처치해버리니 전처럼 함부로 건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청산의 평화를 되찾게 해준 한내구 장군이 생을 다하자 그 유해를 앞으로는 청산의 바다가, 뒤로는 당리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당리 마을 언덕에 안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 사당을 지어 영정을 모시고 마을주민들이 매년 정월초하루 한내구 장군을 추모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고유 장례문화 ‘초분’과 민속신앙놀이 ‘풍어굿’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한 번에 매장하지 않고 가장(假葬 초분)해 두었다가 육탈이 된 후에 뼈만을 묘에 매장하는 이중 장사의 대표적인 사례인 초분관행이 이 지역에서 내려오고 있다. 초분은 관 밑에 돌을 놓고 초가지붕 하듯이 짚으로 엮는 마람(마름의 사투리로, 이엉이라고도 함)으로 엎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새끼줄로 엮어 놓는다. 청산은 예부터 농사를 많이 짓기도 하였지만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도 많았다. 자식이 생계를 위해 먼바다로 고기잡으러 가면 몇 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식이 어업을 하러 간 사이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마을에서 자식이 돌아오기 전에 장례를 치를 수 없어 자식이 돌아올 때까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자식이 돌아오면 뼈만 묘에 매장을 하며 장례를 치른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또한 농사를 많이 짓는 마을이기 때문에 땅을 신성시하는데 살은 부정하고 뼈는 정한 것으로 보아 부정한 시신을 바로 땅에 묻는 것을 금했다거나, 음력 정월에 땅을 건드려서 묘를 묻으면 마을에 우환이 온다거나, 시신이 썩은 냄새를 조상에게 풍기지 않기 위하거나, 초분은 정성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살아서 못다 한 효도의 표시로 한다는 등의 여러 의견이 있다. 또한 청산면 당리 마을에는 200여년 전부터 전해 오고 있는 풍어제가 있다. 황금어장지인 청산도 근해에서 고기잡이와 해조류를 채취하면서 근면, 성실하게 살아온 이 고장 어촌마을 주민들로부터 전승되어 온 민간신앙이다. 청산도는 주변 해역이 외해와 접해 있고 어장 조건이 뛰어나 80년대까지 고등어 파시가 형성된 황금어장지였다. 주민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농사보다는 거친 바다와 싸워야 했는데, 자연과의 대응은 주민들에게 숙명적인 과제였다. 인간으로서는 자연의 극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자연의 극복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신에게 제를 모시게 되었다. 이 의식은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날이면 마을에서 일제히 출어를 막고 마을에서 전정된 제주(祭主)들로 하여금 온 주민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차리고 한 해의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소원하면서 용왕님께 제를 올리는 의식으로 풍어굿이 시작된다. 풍어굿이 끝나면 무녀는 제를 올린 음식을 깨끗한 종이에 싸서 바다에 던지고 돼지머리를 물에 바치는 헌식을 하고 나서 온 주민과 함께 해안가에 모여 장만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신명나게 풍어굿을 치며 하루를 즐겁게 노는 전통 어촌마을 민속신앙놀이다.

오직 청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슬로푸드 ‘탕’

육지로부터 먼 청산도까지 오신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상에 올리거나 제사상에 반드시 올리는 음식이 바로 ‘탕’이라는 음식이다. ‘탕’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국물 요리로 오해할 수 있지만 국물이 있는 음식이 아닌 되직한 음식이다. 쌀가루에 물을 부어 저어주면서 끈적끈적 된죽이 되면 청산의 특산품인 전복, 문어 또는 소라 등 해산물을 잘게 썰어 넣으면 탕이 완성된다. 처음에 입에 넣었을 때 약간 슴슴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청산의 바다 맛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청정바다에서 잡아온 해산물과 해풍을 맞고 자란 곡식이 만나 바다의 향과 땅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고유 향토 음식이다. 당리마을은 유채꽃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경관작물을 경작해 더욱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경관 작물을 연구, 마을주민들의 소득 향상뿐아니라 청산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