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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연홍마을

따뜻한 마음이 살아 숨쉬는 그림같은 예술의 섬

본문

  • 삶을 개척하고 가난을 극복한 연홍도 사람들
  • 섬 안의 유일한 미술관 ‘연홍미술관’과 ‘연홍사진박물관’
  • 지붕없는 미술관 연홍마을에는 자랑거리도 많아

연홍마을은 마을을 걷는 주민들의 뒷모습까지도 아름답다. 전국 최초 섬 안의 미술관인 ‘연홍미술관’이 자랑이다. 특히 삶을 개척해가는 열정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예술의 섬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연홍마을은 옛 정취가 살아있는 정겨운 곳으로 봄이면 소가 쟁기로 밭을 간다.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주민공동체 마을인 고흥군의 대표 힐링마을 연홍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림이 되는 섬이다.

바다위에 떠 있는 연(鳶)처럼 아름다운 섬

멀리서 보면 부메랑처럼 혹은 가오리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지붕없는 미술관 연홍마을은 바다위에 떠 있는 연(鳶)같아서 연홍도(鳶洪道)라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거금도와 맥이 이어져 있다하여 ‘연(鳶)’자가 ‘연(連)’자로 바뀌었는데 섬의 지형이 말 형상이라 하여 마도(馬島)라고도 불렀다. 원적(元籍)은 신전리로 되어있고, 1928년에 마도를 연홍으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연홍마을은 ‘예술의 섬’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 나오시마를 떠올리게 한다. 면적은 0.77㎢로, 해안선은 4km이다. 연홍도는 고흥의 끝자락인 우리나라에서는 일곱 번째로 큰 금산면에 딸린 섬으로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를 차례로 건너서 신양선착장에서 600m(배로 5분) 떨어진 섬이다. 섬 주변으로 보성, 장흥, 완도 3개 군을 조망할 수 있고 섬 뒤편으로는 금당도가 보이고, 동쪽편으로는 이순신 장군의 절이도 해전지와 몽돌해변과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섬에는 가슴 아픈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뱃일을 하는 젊은 청년과 섬처녀(큰애기)가 사랑을 했는데 둘은 결혼을 약속하고 바다로 일을 나간 청년이 만선으로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태풍으로 인해 청년이 영영 돌아오질 못했다. 그 후 큰애기는 혼자서 청년의 아이를 낳았고 바람이 불 때면 섬밖에 나와 남편인 청년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섬밖에는 큰애기 바위가 있는데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삶을 개척하고 가난을 스스로 극복한 사람들

삶을 개척해가는 따뜻한 마음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예술의 섬 연홍도는 여름철이면 태풍이 불고 겨울철이면 강풍이 불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1940년 어느 날, 주민들은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연홍선창을 쌓았다. 국고보조금 받은 금액에 부족한 예산은 마을의 육종포 매도대금 일부를 투자하여 2년에 걸쳐 동편 방파제 125m와 선착장 60m를 완공하여 도내에서 유일하게 자체 어장선창을 만들었다. 고구마 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섬의 청년들은 무노임으로 동참했다한다. 논이 부족한 연홍도는 가난 속에서 고구마로 연명하면서 바다에서 채취한 해우(김)로 얻은 소득으로는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 때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간척지를 개간하여 전답을 만드는 일이라며 마을주민 김대규씨가 의견을 제시하면서 1962년 제방축조를 시작으로 때배를 저어 돌을 실어 나르고, 1963년 간척지를 근로사업장으로 책정받아 밀가루(무상원조)사업으로 4천평의 저수지를 만들고 옥토를 만들었다. 그 후 IR667 기적의 볍씨(지금의 통일볍씨)를 순천 농림고등전문학교에서 보급하였는데 주민 스스로가 만든 자기 논에서 수십가마씩 나락을 수확했다. 그 때부터 가을만 되면 즐거운 비명으로 연홍도가 들썩였다한다. 그렇게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 가난을 주민들 스스로 힘으로 신지포 간척지를 개간하여 삶을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걸어가는 뒷모습도 그림이 되는 명소

연홍도에는 폐교를 활용해서 만든 연홍미술관이 있는데 옛 연홍분교에 화가인 선호남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섬은 지붕없는 미술관이라 할 만큼 그 자체로도 바다위에서 아름답다. 특히 섬에서 바라보는 지는 석양은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의 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린왕자가 살았던 별에는 바오밥나무가 있다면 연홍도에는 팽나무가 수호신처럼 서 있다. 미술관을 주변으로 담장 벽화에는 ‘연홍사진박물관’이 발길을 붙잡고, 그 벽화 속에는 고흥이 고향인 박지성선수가 있고, 거금도에서 태어난 박치기 왕 김일도 있다. 그래서일까 연홍도는 항상 봄같다. 해안선을 따라 걸어도 4km정도 남짓이라 한나절이면 섬 일주가 끝나지만 매년 봄이면 다시 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연홍도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느 새 둘레길 3코스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서쪽을 돌아 나오는 ‘아르끝 숲길’과 섬의 북쪽을 걷는 ‘좀바끝 가는 길’이 그 길이다. ‘아르’라는 말은 섬의 사투리로 ‘아래’라는 말이고, ‘좀바’는 붉은 색 생선인 ‘쏨뱅이’를 가르킨다.

지붕없는 미술관 연홍마을엔 자랑거리도 많아

56세대 93명 주민 대다수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는 탓에 밭이 많다. 섬마을 지형적 특성상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있다. 운이 좋으면 쟁기로 밭을 가는 촌락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마을주민들이 채취한 재료로 섬마을 부녀회원들의 ‘연홍식당 엄마밥상’으로 차린 남도의 맛을 즐길 수 있는데 토속음식으로 쏨벵이탕, 우무콩국, 간재미, 회무침, 청각무침, 톳무침이 있다. 섬의 특산품으로 미역, 다시마, 톳, 전복, 고추, 마늘, 양파, 콩 등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발길 닿는 곳마다 셀카 명소가 여러분을 기다린다. 폐교를 활용한 섬 안의 미술관 연홍미술관, 섬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200여점의 연홍사진박물관, 다양한 정크아트 작품인 담장 벽화길, 300년 된 팽나무, 물수제비를 뜨는 몽돌해변, 대형소라 조형물이 있는 해안둘레길, 야자망태기가 깔려있는 아르끝 길, 후박나무가 있어 여름에도 시원한 좀바 끝 길이 그 곳이며,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섬 in 섬 연홍도 협동조합’을 순번제로 운영하며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연홍마을은 과거의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고흥군의 문화예술 대표마을로 기반을 마련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섬마을 자원의 문화예술로의 연계는 관광객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곧 주민의 소득창출이 됐다. 앞으로도 섬마을 ‘뮤비컬쳐 플랫폼’, ‘행복한 연홍 로컬푸드’, ‘AI기반 가가호호 어르신케어’ 등 실현 가능한 사업들이 계획되어 있다. 이렇듯 연홍마을은 작은 섬마을이지만 자연을 활용하여 문화예술로 승화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면서 문화예술은 특정지역과 특정계층만 향유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삶터에서 문화예술을 기반을 한 마을의 지역공동체 활성화로 앞으로도 지속가능하고 발전가능성이 높은 마을로 손꼽힌다.